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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만빙여 아가씨가 잔뜩 토라져 가지고 조그만 입을 삐죽삐죽하면서 종알댔다.
“강주 아우! 우리 할아버지하고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게지? 좋아, 맘대로 해. 말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으니까‥‥”노인은 시종 웃는 낯으로 손주딸을 꾸지람했
다.”이 철없는 계집애야! 강주는 너보다도 나이 어리지만 이렇게 점잖고 냉정 침착한데,
너는 어째서 그렇게 불덩어리같이 조급하게 성미만 부리고 야단이냐? 이 할아비가 왜 너
에게 알려 주지 않을 까닭이 있겠느냐? 단지, 추측만으로 속단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
다. 만약에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에 이 할아비가 경솔하게 잘못이라도 저지른다면 그때
에는 이 할아비의 체면이나 위신이 무슨 꼴이 되겠는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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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빙여 아가씨는 할아버지가 간곡히 타이르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성미를 가라앉히고
다소곳이 말이 없었다.이때, 이미 나머지 석양이 산 저편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까치 떼들이 숲속으로 잠자리를 마련하려고 돌아오고 있었다.노인은 명령하듯 말했다.
“얘들아! 우리 어서 가 보자. 어쩌면 오늘 밤에 삼보고찰에서 무슨 사건이 발생할는지도
모를 일이다.”삼보고찰 내부.등불과 촛불빛이 휘황하게 어른거렸다.소림파의 제이대, 사대
수많은 제자들이 갈팡질팡 분주히 오락가락했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엄숙하고 심각
한 표정이 잔뜩 서리어 있고, 웃는 사람도,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대전(大嚴
) 안에는 일곱 구의 시체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비록 등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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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하지만, 역시 으스스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면에 감돌고 있었다.대전 뒤에 있는 선
방(禪房) 안에 소림파의 영도자 명원방장이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얼굴이 까칠해
졌고, 흙빛같이 누르퉁퉁했다. 두 눈을 꽉 감고 묵묵히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처량하기
비길 데 없었다.선상 맞은편 들창 밑에는 한 쌍의 박달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화
산파 영도자 팔음옥소 매소천과 무당파의 두령 제일명이 앉아 있다.선상 옆으로는 한 개의
얕은 걸상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피워 놓은 향불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줄기줄기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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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들 퍼져 올라가고 있었다.방안 전체에 그윽한 향내가 진동했다.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도 극도의 슬픈 기운이 차 있었다.벌써 밤은 이경을 지난 모양이었다.고찰(古烈) 앞, 고색 창
연한 한 그루 잣나무 밑에는 키가 작은 화상이 하나 조용히 서 있었다. 비통과 울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어 점점 기울어져 가는 달빛을 바라다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그는 누구일까? 바로 소림파 제이대의 고승(高僧), 쟁쟁한 고수급 인물들 중에서 단지 하나
남아 있는 천각선사(天覺禪師)였다.이때, 천각선사는 산문(山門) 왼편에 서 있는 또 하나 다
른 한 그루 잣나무 가지 위에서 누군지 갑자기 너털웃음을 치고 있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헤헤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