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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낀 듯 흐릿한 시야에 비치는 것은 돌로 만들어진 방이다.벽에 즐비한 책장에,

새빨간 선으로 그려진 마법진.바로 방금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

지 못하고, 의지도 의식도 지성조차 전혀 없는 제로 상태로부터의 변화는 꿈에서 막

깨어난 상태와 같았고, 그러나 그 이상으로 선명한 변화였다.마치 지옥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려진 것 같은――.혹은 안식으로부터 끌려나온 것 같은――.시각, 청각, 후각

――모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정보량에 사고가 압박된다.혼란의 끝에 있

는 나를 향해, 쉰 목소리가 말을 건다.”눈을 떴나……자질이 있던 건가……송장인(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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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맨)이여”스며들 듯이 뇌 속으로 들어오는 그 소리에, 나는 옆을 본다. 거기서 처음

으로, 나는 자신이 받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을 깨달았다.목소리의 주인은, 어둠 자체

를 형상화한 듯한 검은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었다. 무수한 주름이 진 거무스름한 외

는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의 세월을 살아왔는지 예상할 수 없고, 반짝이는 어두운 눈

을 보면 허약하단 인상은 느껴지지 않는다.그 뼈가 드러난 몸, 손바닥에는 비틀리고

꼬인 꺼림칙한 의장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다.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파악할 수 없다

. 수상한 시선을 던질 수 밖에 없는 나에게, 노인이 말한다.마치 나에게 대답이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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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단 듯이.”나의 이름은 호로스 카멘. 신비에 도전하는 자, 마도

사이자 네놈의 지배자(로드)다. 프레시 맨이여. 『무릎 꿇거라』”그 말을 듣는 순간, 소

리가 고막을 자극한 그 순간, 온몸에 기묘한 감각이 돌았다. 몸이 내 의사에 반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받침대 위에서 일어나, 마치 아기가 처음 일어서는 것처럼 느릿

느릿한 동작으로 일어선다. 몸이 굽혀져,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무릎이 꺾인다. 정

신이 들자 나는 바닥을 눈앞에 두고, 로드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쾨쾨한 냄새.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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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돌바닥.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빛이 거의 없는데도, 내 눈에는 마치 세상이 낮인

것처럼 명료하게 보인다는 사실을.위화감. 느낀 위화감을 시작으로, 정보가 조금씩

정리된다. 밖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처리로 고작이었던 내 뇌의 리소스가, 안쪽의 기

억 정리에 소비된다.갑자기 머리를 탁탁 얻어맞는다. 충격은 있지만 아프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늘 있던』 심장 박동도 없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던 뇌 속

을 세검으로 휘젓는 듯한 두통도, 내장이 썩어 녹아내리는 듯한 아픔